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낸 책
정현진 목사(수도교회)

최영 박사(목회와신학연구소 소장)가 새로운 책을 냈다. 그 제목은 «개혁교회 신학연구»다. 이 책의 한 축은 그가 신학사상, 기독교신학논총, 조직신학논총 말씀과 교회 등 국내 유수한 학술지에 발표했던 것들이다. 다른 한 축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의 목회학박사원에서 강의했던 것들이다. 그의 여러 해에 걸친 연구결과가 집약된 만큼 이 책의 내용은 매우 탄탄하다. 더 나아가 개혁교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담겼다. 또한 ‘개혁교회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다. 서론에서 저자가 밝히듯이 ‘모든 글은 오늘의 한국장로교회의 개혁과 일치를 기대하며 바르트 신학의 개혁신학적인 특징들을 드러내려고 노력한 결실들’이기 때문이다.
1장 “개혁교회, 무엇이 다른가?”에서 그는 개혁교회 안에서조차 1) 율법주의적인 행태가 신앙과 경건의 특징인 양 간주되고 2)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등 비 개혁교회적인 요소들이 판치는 오늘의 현실을 진단했다.
개혁교회는 세상에 있는 다른 교회들과 똑같이 1) 하나의 2) 거룩하고 3) 보편적이며 4) 사도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다. 동시에 개혁교회는 이 지구촌의 다른 교회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들 곧 1) 하나님의 절대 주권 2) 하나님께만 영광을 3)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인 예정 4) 성도의 신앙보다 앞서는 성령님의 역사 5) 선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믿음과 행함의 일치추구 등을 품고 있다.
2장에서 그는 “개혁교회의 신학원리”를 다루었다. 그는 여기서 형식원리(오직 성경으로)와 내용원리(오직 믿음으로)가 종교개혁운동을 추진하는 힘이었다고 보았다. ‘오직 성경으로’라는 형식원리를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서에서 말씀하신다(deus dixit)’라는 구호로 정착시켜 초지일관 관철한 것은 루터교회나 감리교회가 아니라, 개혁교회였다.(65-72쪽) 츠빙글리는 ‘그러므로 다른 가르침을 복음과 같게 여기거나, 복음보다 더 의미 깊게 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다 잘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모른다.(67개조 중 5조)’라는 말로 이런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했다.
3장에서 그는 “개혁교회의 실제적 교의”라는 제목 아래 초기 개혁교회의 신앙문서들과 개혁교회의 4대 문서(제네바 신앙문답서 프랑스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에 기초하여 ‘신앙과 의인’ 및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위’를 다루었다. 그는 루터교회와 구별되는 개혁교회의 특징 곧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주체는 항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앞선 것이자 우선적인 것’을 향한 관심이 개혁개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철두철미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4장에서 그는 “교회정치의 신학적 의의”에 관해 언급했다. 칼빈은 ‘타락 이후 혼돈과 무질서에 모든 것이 통째로 삼켜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전까지 임시로 적용되는 과도적·잠정적인 인간의 조직’인 교회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교회·노회·총회 등에서 눈살 찌푸리듯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를 다투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주권만을 온전히 나타낼 것인가’에 집중하여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과 관계가 있다.
5장에서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칼 바르트”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칼 바르트는 평생 동안 1) 자유주의 신학 2) 로마 가톨릭교회를 상대로 논쟁했다. 바르트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해 부정과 배격에서 시작하여 차츰 긍정적인 접근과 이해를 모색해 나갔다. 그가 죽기 하루 전인 1968년 12월 9일에 쓴 ‘떨쳐 일어나 방환전환하고 고백하며’라는 글은 같은 달 18일 에큐메니컬 기도회에 모인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을 상대로 하려던 강의원고였다. 미완성인 이 글에서 그는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치와 개혁을 간절히 소망했다.
6장은 “종교개혁의 교회관”이다. 교회론을 향한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은 첫 세대인 루터나 츠빙글리보다는 둘째 세대가 씨름했던 것이다. ‘어떻게 내가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물었던 루터와 달리 칼빈은 ‘어떻게 내가 참된 교회를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180쪽) 교회가 참된 교회로 되느냐의 관건은 그리스도가 그 교회 안에서 권능을 행사하시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1)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2)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며 3) 산자들이 말씀으로 권징을 받음으로 4)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곳에 참된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206쪽) 이런 의미에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할 교회’인 것이다.
7장은 “칼빈과 제네바 교회의 개혁”이다. 최영 박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가 직면하는 두 가지 위험: 1) 교회가 세상 앞에서 자기 영화에 몰입할 때 생기는 신성화의 위험 2) 교회가 세상적인 힘과 유행에 자신을 맞추려 할 때 생기는 세속화의 위험이라는 문제의식을 안고, 칼빈의 교회론을 고찰했다.
8장은 “종교개혁과 성서”다. 종교개혁자들은 수백년 동안 쌓이고 쌓인 온갖 전통 법 귄위를 거슬러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성서를 기독교의 신학과 교회의 바탕과 규범으로 삼아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리를 세웠다. 이것은 흔히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말로 표현되었다. 1528년 베른 테제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법령이나 계명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모든 전통은..그것들이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지배되는 한에서만 우리에게 구속력이 있다’고 했다.
9장은 “칼빈주의 전개과정과 성서”다. 칼빈주의란 1) 칼빈과 그의 저술에 영향을 받은 이념과 공동체(개혁교회), 사람들 2) 칼빈 자신의 사상체계를 가리킨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기에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신학방법들이 포함되었다. 지금은 칼빈주의라는 말보다는 개혁교회라는 용어가 더 선호된다. 이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성서를 배타적이며 최종적인 권위로 삼는다는 점이다.
10장은 “신정통주의 성서이해 –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이다. 바르트가 시작한 20세기 새로운 신학운동은 ‘변증법적 신학’과 ‘신정통주의’란 이름으로 표현되곤 한다. 사실 그는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을 재건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살려냈으며, 성서와 복음의 진리를 새롭게 규명했기에 그를 ‘성서적, 복음적 신학자’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
최영 박사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다. 그 우물 이름은 개혁교회다. 거기서 뜨는 물에는 개혁교회의 두 기둥인 칼빈과 바르트의 맛이 난다. 개혁교회에 속한 우리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우리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려는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