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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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성령강림 후 다섯째주일, 총회제정 맥추감사주일

욥 28:12-28

나현기 목사(한신대학교 교목실, 연구위원)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5절~1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유월절, 맥추절, 수장절)가 등장합니다. 맥추절은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맥추감사절을 7월 첫 주에 드리는 전통은 성경의 절기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농사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듯 합니다. 보리 추수가 보통 6월이었고 이를 모두 마치고 7월에 감사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에 진정한 감사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욥기 28장을 보면 성경이 전해주는 감사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욥은 참 지혜의 근원이 무엇인가 묻고 있습니다(28:12). 인간인 우리는 그것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28:13). 지혜의 근원은 결코 세상이 귀하다고 여기는 것들(순금, 수정, 진주와 벽옥, 황옥), 즉, 세상의 지식으로는 결코 발견되지 않습니다(28:15-19). 오직 하나님만이 그 본질과 거기에 도달하는 길을 아십니다(28:23). 결국 우리가 지혜를 구하고자 할 때 오직 해야 하는 일은 “악을 떠나 주를 경외하는 일”(28:28)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악을 떠나야 한다는 본문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기 원문에서 “악으로 부터”(מרע, 메라)는 “나쁨”, “고통”, “괴로움“, ”비참함“, ”윤리적 악“, ”악한 행동“ 등을 의미합니다. 매사 바르게 판단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사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욥기가 전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본질입니다.

욥기 28장이 전하듯이 세상의 빛나는 것들에는 지혜가 없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진리에 이릅니다. 그러나 세상 귀한 것들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하여 돌아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사에는 용기를 내어 온전히 돌아서서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전 생애를 감사의 삶으로 살았던 개신교 수도사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 중에 남방 수도원 영성(광주, 화순, 남원)의 토대를 놓았던 이세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출생년도도 분명하지 않고, 제대로 된 사진이나 글 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감신대 정경옥 교수가 일제강점기 때 신학교를 그만 두고 낙향한 뒤 이세종의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났습니다. 이후 “숨은 성자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새사람』지에 기고하면서 이세종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은성수도원의 설립자인 엄두섭 목사가 쓴 『호세아를 닮은 성자: 도암의 성자 이세종 선생 일대기』를 통해서 그의 삶과 사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세종은 어려서 고아가 된 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결혼한 뒤에 자식을 얻지 못하자 산당을 짓고 기도하던 중 기독교 복음을 전해 듣고 성경을 읽게 됩니다. 그 뒤로 화순 천태산 자락에 수도 거처를 마련하고 모았던 모든 재산을 동네의 가난한 이들과 장로교 전남노회 등에 기부하고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 합니다.

이세종은 절대 청빈과 나눔, 풀 한포기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자연 사랑,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세종의 성경연구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자기에게 모여든 제자들에게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너 죽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수도처에서 낮이면 종일 성경을 읽고, 밤에는 읽은 구절을 암송합니다. 성경을 깊이 이해하려면 그만큼 읽는 이가 깨끗하고 순결하며 양심이 맑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읽고 깨달은 구절은 “한 번 읽으며 한 번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를 깊이 파서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실천을 강조했던 이세종은 하나님께 드릴 기도 역시 축복만을 달라는 기복적 기도를 거부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하시려는 뜻을 헤아려 기다리고 실천하는 일”이며, 이것이 참 기도라고 했습니다. 축복을 위한 간구의 기도드릴 시간에 한 명이라도 가난 한 교인들을 구제하라고도 합니다. 이덕주 교수(감신대 명예교수, 한국교회사)는 이세종을 비롯한 한국교회 남방 영성의 특징을 ‘성경중심’, ‘실천중심’이라고 정의내립니다.

좋은 스승 밑에는 좋은 제자들이 나오는 법입니다. 이세종 옆에 머물면서 따르던 ‘맨발의 성자’ 이현필은 이후 동광원과 귀일원을 설립해서 탁발수도하며 가난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걸인과 나병환자의 아버지’인 최흥종 목사와 독신전도단을 이끌었던 강순명 목사 등이 이세종의 제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욥기는 감사의 삶은 악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이세종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삶을 보면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삶, 조금 더 검소하게 살고 서로 나누며, 작은 것들의 고통을 아파하고, 성경을 읽고 깨달으면 바로 실천하려는 노력만큼은 크리스챤인 우리도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삶, 경외하는 삶, 감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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