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요나의 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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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

요나 3:10-4:11, 사도행전 28:11-31, 마가복음 16:15-20

이순태 목사(전주신광교회, 연구위원)

1.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니느웨에 심판이 임박했음을 전하였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막 16:15), 그것은 큰 기쁨의 반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 요나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습니다. 싫어하고 화를 냈습니다. 이런 요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몇 가지를 준비하셨다. 첫째는 박넝쿨인데, 이것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뜨거운 열을 피할 수 있게 해주어서 요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둘째로 준비하신 것은 벌레로써, 이것을 통해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셔서 박넝쿨 그늘막도 사라진 상황에서 요나를 탈진케 하셨습니다. 요나는 소리쳤습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이때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그러자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라고 응수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요나의 대화에서 대립되는 두 축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첫째는 심판자의 위치에 서려는 요나의 축입니다. 요나서 전체를 통해서 요나는 마치 자신이 심판자인 양 행세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 하셨을 때, 요나는 그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그런 악한 성은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시자, 요나는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 4:3)라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요나서를 읽을 때 우리는 요나의 신앙고백이 매우 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나는 1:9절에서 하나님을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분”으로, 4:2절에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옳습니다. 또한 요나 4:2절에서 요나는 자신이 다시스로 도망간 이유를 밝히는데, 혹시 타락한 니느웨 백성이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실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요나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는 요나서에서 또 하나의 축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보내시는가 하면, 큰 물고기를 예비하십니다. 뜻을 돌이켜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기도 하고, 박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시련을 주기도 하시고, 은혜를 베풀기도 하십니다. 그 이유는 크고 작은 은혜와 시련을 주심으로써 요나가 무언가를 배우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요나가 고백하는 교리는 흠 잡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교리적 지식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자비롭다는 것을 알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비하시므로 우리도 자비로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나 가난한 자들도 돌보시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시듯이 우리도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교리적으로는 정확했지만, 하나님의 마음과는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긍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죄인을 안아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심판자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로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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