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9. 성령강림후 일곱째주일
누가복음 13장 22-30절
한강희 목사(낙산교회, 연구위원)
“사회가 이대로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범죄자를 재판하고 처벌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공동체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 톨스토이의 『부활』 중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호 톨스토이(Lev N. Tolstoy, 1829-1910)는 1899년 『부활』이라는 소설을 발표합니다. 이 소설은 신앙인들에게 익숙한 부활의 의미 즉,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식의 육체적 부활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줍니다. 톨스토이는 소설 속 주인공이 죄를 짓고, 회개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인간성과 정의를 회복해가는 의미에서 부활의 실존적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러시아 귀족 출신인 주인공 네흘류도프 공작은 카츄사라는 여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사죄하기 위해 좁은 문을 향합니다. 카츄사는 돈 많은 상인을 독살해 금품을 빼앗았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옥에 갇히게 됩니다. 네흘류도프는 카츄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것이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사죄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흘류도프는 카츄사의 누명을 바로잡기 위해 구명운동을 전개합니다. 하지만, 그는 만만치 않은 사회의 부패상을 목격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해 옥에 갇힙니다. 주인공은 귀족 사회의 매정함과 이기심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 정교회와 신앙인들의 타락 그리고 무관심까지, … 네흘류도프는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냉혹한 사회의 한 단면을 깨닫습니다. 네흘류도프는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간 자신의 방탕하고 비도덕적 삶을 청산합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농노들에게 나누어주고, 카츄사가 있는 시베리아 유형지로 떠납니다. 네흘류도프는 죄로 가득 찬 자신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19세기 말 불의와 위선이 팽배하고 용서와 사랑이 결핍된 러시아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기주의로 공생의 가치가 무너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진정한 신앙의 의미는 무엇인지 톨스토이의 <부활>은 묻고 있습니다.
부활을 향한 여정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여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2-30절에서 예수께서는 구원의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음(24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 길을 배척하는 자는 바로 불의를 일삼는 자들(27절)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주인공 네흘류도프와 넓은 문으로 향하는 교회와 위정자들을 보게 됩니다. 소설 속 신앙인들은 불의에 눈을 감고 무고한 자들의 억울함에 침묵합니다. 하지만, 네흘류도프는 누군가의 누명을 드러내며 진리를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헌신합니다. 톨스토이는 이것이 부활의 여정이며, 새로운 인간의 등장이라고 묘사합니다. 누가복음 말씀 속에서 예수께서도 불의가 아닌 의를 쫓는 자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자이며,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라 설파하십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와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앞서 인용한 톨스토이 소설의 한 대목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이대로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범죄자를 재판하고 처벌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공동체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동정과 사랑의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이기도 합니다.